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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우수목장 년도별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 우수목장 사례입니다.

체크포인트

목장 개요

목장현황, 목장 변천사

건우목장

교수님이 운영하는 목장이 있다. 아버지가 송아지 2마리로 시작한 목장을 아들이 물려받으면서 규모나

생산량 면에서 3배이상 성장시킨 김재일 재은목장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 현장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래의 낙농인들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물려받은 목장에서 돈을 벌 때마다 재투자해

조금씩 규모를 늘린 김 대표는 학생들에게도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목장에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목장 주변 땅을 사서 확장시키다 보니 이어붙인 형태의

목장이 됐지만 그는 이것이 전형적인 한국형 목장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국형 목장의 미래를 후계 낙농인들에게 제시하고 싶다는 교수님의 목장으로 가보자.

한국농수산대학 현장실습 목장.
김 대표는 현장 교수로 일한지 4년째 접어들었다.
그간 재은목장 을 거쳐간 학생만도 10명이 넘는다.

교수님이 운영하는 목장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영을 공부한 김재일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교 현장교수를 한지 4년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재은목장을 거쳐간 학생만도 10명이 넘었다.
“너희가 노동자가 되고 싶으면 노동자가 되지만 학생이 되고 싶으면 학생이 된다고 말합니다. 배우고 익히려고 하면 알게 된다고 늘 말하죠. 학생들이 물어보는 것은 반드시 알려주고 제가 모른다면 아는 분을 찾아가 서라도 해답을 찾아 줍니다.”
학생들은 1년 365일 쉼없이 일하는 교수님을 본받아 현장에 가서도 거칠 것이 없다. 낙농 2세들이 실습생으로 들어오는 일이 많기 때문에 김 대표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저와 모든 일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목장에 돌아가서 배운대로 하고 싶다는 학생들도 많죠. 실습농장이지만 기술적인 것 뿐 아니라 미래 낙농후배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많이 합니다.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주인의식은 가지되 주인인척 하지말라고 말합니다.”
낙농 2세들이 목장을 물려받기 전에, 내 것인 양 허세를 부리는 것을 지양하고 대신 반드시 이 목장이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라 는 것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의 주된 가르침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성실입니다. 소 밥통하고 물통, 목장 청소만 해도 중간은 갈 수 있다고 말하죠. 이것만 성실히 지켜도 돈은 법니다.” 기본을 지키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그 기본을 ‘열렬히’도 지켜내고 있다.
“목장이 큰길 옆에 있고 민가와 공장이 많은 지역이라서 항상 노력 해야 합니다. 냄새가 없도록 우사를 관리하고 축사바닥이 질어질 틈이 없이 로터리를 쳐야 합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하루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목장의 위치가 저를 성실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재은목장은 도로를 접하고 있는 데다 주위에 민가와 공장이 있어 민원에 항상 신경을 쓴다. 때문에 목장입구 청소와 우사 정리를 기본으로 실천하고 있다.

송아지 2마리에서 3톤 납유 농장으로

재은목장은 수정사인 김 대표가
자가수정을 통해 송아지를 생산한다.

2016년 화재사건 이후
김 대표는 모든 것을 손수 만들고
고쳤다. 목장 곳곳에 김 대표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1976년 부친이 송아지 두 마리로 재은목장을 시작했다. 돼지도 키워 보고 양에 염소까지 키우다가 송아지를 처음으로 키웠는데 결국 소가 유산을 했다. “유산을 하고 아버지는 소를 팔자, 어머니는 다시 수정을 시켜 젖을 짜자고 하시면서 다퉜던 것이 결국 낙농목장의 전신이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낙농으로 집 앞에서 소를 키우면서 12마리까지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1988년에 파이프라인 착유사를 짓고 목장의 틀을 마련했다고 하셨습니다.”
부친 김정겸 씨는 차츰 목장을 늘려 1톤 정도를 납유하는 중견목장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2000년 경 아들 재일 씨가 처음으로 목장에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일을 도왔지만 제대로 낙농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목장일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목장일의 10% 정도를 한 것 같아요. 쿼터제가 시작되면서 아버지가 ‘목장을 계속 할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하겠다고 했더니 쿼터를 사고 목장을 본격적으로 확장시켜보자고 하셨는데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모든 목장 일이 김 대표에게 넘어왔다. 목장에서 번 것은 모두 목장으로 재투자했다. “아버지와 싸우면서 쿼터를 늘려갔습니다. 학창시절 모아둔 돈으로 TMR배합기를 사고 송아지 우사와 분만실도 제가 모아둔 돈으로 만들었어요.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목장 규모가 커야 수익이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모를 늘리겠다는 생각으로 10년 정도를 꾸준히 노력한 것 같아요.”
규모가 커지고 목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김 대표는 이제부터 규모보다 효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젊을 때부터 제 몸하나 믿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목장의 규모가 늘더라구요. 새로 축사가 필요 해졌고 신축사 조성을 위한 목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빚이 생겼습니다. 대출이 늘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됐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 대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수정료라도 아껴보려고 자가 수정을 시작했다. 뭐든 하나를 하면 제대로 하는 그의 성격 덕에 수정사 자격증을 따고 자가수정에도 일가견이 생겼다.
“때마침 그 당시 후배가 소결핵으로 키우던 소를 모두 땅에 묻는 것을 보고 ‘유대만으로 살 수 없겠다. 목장경영에 어떤 위기가 닥쳐도 헤 쳐나갈 나만의 필살기가 하나쯤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수정사 자격증 을 땄습니다. 정 안되면 수정사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수태율이 올라가고 송아지 숫자가 엄청 늘어났 습니다. 그 많은 송아지가 자라면서 덩달아 착유량도 늘었고 그렇게 쿼터도 늘렸습니다.”
획기적으로 목장의 규모가 늘어난 계기를 묻자, 딱히 이렇다 할 계기가 없었다는 그의 말 속에 그간의 노력과 시간들이 모두 이유였음을 알 수 있었다.
송아지 두 마리에서 3톤 납유의 거대 목장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그 는 ‘부모님 목장이 당연하게 내 것이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 한다. “목장 2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태하고 어깨에 힘이 들 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부모님들이 평생 일궈온 목장을 반드시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성실을 무기로 기본을 하면 된다는 그의 교과서 같은 말은 그간의 숨은 노력이 바탕이 되기에 교 과서가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부친이 송아지 2마리로 시작한 목장을 3톤 납유의 대농으로 성장시킨 김 대표지만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성실히 노력할 뿐이다.

위기를 기회로 잡은 재은목장

사료조의 건초 하나도 허실이 나지 않도록
늘 쓸어 모아 목장에서 새는 돈을 막는다.

승승장구하기만 했을 것 같은 재은목장이지만 태풍에, 구제역에 위기는 늘 있었다. 태풍 곤파스로 경기도 서부쪽에 피해가 생기면서 전기가 복구될 때까지 3일 동안 착유를 못해 발전기를 빌려와 착유를 한 적도 있다. 태풍이 지나고 구제역이 왔다. 2010년 재은목장과 직선거 리 80m에 있는 양돈장이 돼지를 다 묻으면서 시청에서 목장으로 전화 가 왔다. 젖소를 함께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다행히 구제역이 터지기 전에 백신을 맞았어요. 가축방역법 상 매몰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를 다 묻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습니다.” 구제역이 다발적으로 터지면서 목장에 수정사가 들어오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다른 목장들은 수정을 못해 송아지 수가 줄었고 구제역 이후 송아지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수정사 자격증이 있던 김 대표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닐, 페트병 등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는 재은목장. 곳곳에 있는 화분들도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오른쪽 사진)화재로 소실된 자재 창고도 김 대표가 손수 지었다.

사료조 바닥에 타일을 깔아 곰팡이가
생기기 않도록 위생적으로 관리한다.

“수정사였으니까 자가수정을 했죠. 구제역 기간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자가수정을 하고 송아지가 나왔습니다. 구제역이 끝나면서 송아지를 사려는 목장들이 줄을 이었죠. 파주에서 창녕까지 재은목장 송아지들이 팔려나갔습니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제역 이후 빚을 많이 갚을 만큼 송아지 생산은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2016년 6월 26일 일요일 새벽 0시26분 이었습니다. 날짜도 시간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스키드로더에서 화재가 시작돼 새벽 2시에 발견했어요. 스키드로더 2대와 건초, 컨테이너, 사료와 부산물, 첨가제, 건초창고, 배합기, 착유실이 탔습니다.” 화재로 1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재은목장은 복구를 위해 1억 원 이상을 썼다. “총 2억원의 손실이 난 거죠. 송아지 판매수입으로 빚을 좀 갚아서 이제 살만했는데, 다시 빚을 내서 목장을 복구해야 할 상황이 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든 것을 제가 직접했습 니다.”
김 대표는 연장을 들고 새벽 2시까지 직접 용접을 하며 화재로 소실 된 건초창고를 지었다고 한다. “젖소들은 우유를 생산하고 있고 제때 납유는 해야 하고 목장을 가동해야 하니 새벽까지 일을 했습니다. 밤을 새며 일을 했더니 1주일 사이에 8kg이 줄었더라고요.”
이렇게 다시 재개한 재은목장은 김 대표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후배들이나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는 학생들에게도 늘 이야기 합니다. 해보고 말하라고. 엄두가 안난다는 생각은 접으라고 하죠. 위기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달까요.”

2018년에 2열 4두로 증설한 착유실. 건식으로 관리하며 젖소의 유방염 예방에 신경을 쓰고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김 대표는 도시와 인접한 목장에서
퇴비부숙 도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과감히 투자해
콤포스트를 설치했다.

김 대표는 뭐든지 미리, 준비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건초를 컨테이너로 받는데 2달전에 선주문을 하고 예약을 합니다. 도시 목장이기 때문에 자가조사료포를 모두 갖추기 쉽지 않지만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경영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죠.” 중간 물류비용을 없애고 선주문으로 예약을 해서 건초를 시중가의 10% 정도는 저렴하게 받는다. 건초가 들어오면 건초를 묶는 작업을 직접해 작업비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목장은 100이 들어오면 100이 나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깨끗한 목장이 되기 위해 매일 청소하면서 사료조에서 남은 것들을 다시 사료조로 넣고 그렇다 보면 마이너스 날 것이 없습니다. 여름철 사료조 곰팡이도 줄어들죠.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나는 접점이 한 곳에 있다는 겁니다. 100을 먹이면 100이 나오게 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입니다. 사료조 밖으로 나가는 사료를 한주먹씩 1년간 모으면 톤백 하나가 됩니다. 허실을 줄이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그는 목장의 모든 것을 직접 해나간다. 건초 창고를 지으려고 건축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직접 공사를 하다보니 포크레인 면허와 굴삭기 면허까지 땄다. “부모님이 워낙 근면 성실하셨어요. 그렇게 일궈온 목장을 제가 망쳐서는 안돼죠. 목장의 기본은 근면 성실이라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은목장은 퇴비장 바닥에 퇴비를 펼쳐서 1차로 부숙시켜 수분을 적당히 날린 후에 콤포스트에 넣어 발효시킨다. 콤포스트를 이용하면서부터 축분의 양이 획기적으로 줄었으며 손으로 만져도 될만큼 보슬보슬한 상태의 퇴비는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콤포스트로 퇴비 관리

김 대표는 항상 깨끗한목장가꾸기운동
실천 자가점검표를 체크해가며 항목별로
목장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목장관리 중에서도 퇴비 관리에 가장 신경을 쓴다. “도시 목장으로 대로 옆에 목장이 있으니 민원이 많을 수밖에 없어
환경문제에 예민합니다. 봄, 여름, 가을은 컬티베이터를 돌리고 겨울은 로터리를 칩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 사료조를 치우고 퇴비장에서 바닥에 퇴비를 펼쳐서 마른 퇴비와 쌓아 1차 발효를 합니다. 1차 발효를 한 후 콤포스트(고속발효기)에 넣습니다.”
재은목장을 찾는 이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퇴비 발효장치인 콤포스트다. 1억2,000만원의 설치비를 들여 콤포스트를 설치한 것을 보고 농가들의 질문이 쏟아진다고 한다. “퇴비부숙도 의무화가 되면서 도시목장에서 퇴비부숙도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콤포스트 업체나 설치 농장을 찾아가봤는데 제 좌우명인 ‘한번 해보고 말하자’라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낙농목장에 콤포스트를 설치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업체와 목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갔다. “콤포스트 업체와 거의 연구하듯 문제를 해결해 나갔어요.
이제는 자리를 잡아서 1차 발효된 퇴비를 발효해서 축분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도시목장이라서 민원때문에 주말에 분뇨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주말에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어요. 콤포스트를 설치하고 나서는 가끔 주말에 나들이도 갑니다.” 정부보조금이 있다해도 1억이 넘는 기계를 분뇨처리를 위해 들인 그에게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외려 반문한다.
“외제차는 사면서 목장에 투자는 왜 못합니까. 저는 이게 제 고급차라고 생각하고 가족과의 주말을 보상으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유업 발안낙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재은목장의 미래와 한국낙농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목장에서 나오는 수익은 목장으로 재투자할 수 있도록 목장 외 수입을 창출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목장형 유가공이나 우유를 주제로 한 카페 운영 등을 생각하고 있어요. 자매결연으로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 일을 15년째 해오고 있는데 그 기부금만도 1,000만 원이 넘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작은 돈이지만 목장을 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운동장 바닥은 봄, 여름, 가을은 컬티베이터를 돌려 관리하고 겨울은 로터리를 친다.

체크포인트

화성시는 한반도 중서부에 속하는 경기도의 서남 해안을 끼고 위치해 있으며 육지로는 7개 시를 접하고 바다로는 서해의 평택항으로 충청남도와 경계되며 서쪽의 옹진군과 접하 여 선감도, 대부도를 마주하고 있다. 지역내총생산(GRDP) 경기도 1위를 차지한 화성은 제 조업체 경기도 최다 시로 수출규모만도 경기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낙농현황으로는 363농가에서 2만5,421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고 있으며 이외 축종으로는 한육우가 797농가 2만9,329마리, 돼지가 83농가에서 16만3,206마리, 닭이 207농가에서 512만1,643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선정위원 현지심사평

최낙훈
우유자조금 사무국장

농수산대학 실습-좁은면적 활용한 한국형 목장
콤포스트 설치… 퇴비 처리 효율성 ‘눈길’

좁은 공간에서 매출 극대화를 구현한 한국형 목장이라는 점에서 재은목장 을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퇴비 처리의 효율성이 눈에 띄는데 콤포스트를 설치해 퇴비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분이 많아 질은 곳의 퇴비를 잘 마른 곳의 퇴비와 바꿔주고 마른 퇴비는 깔짚으로 재활용하는 것도 다른 목장들에 게는 좋은 사례가 될 듯 합니다. 부숙이 완료된 퇴비를 질은 분뇨에 섞어서 수분조절을 하고 조사료포에 자가처리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한국농수산대학 실습목장으로 낙농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현장교수로의 능력도 돋보입니다.
낙농후계자들에게 선배 낙농인으로서 살아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미래 낙농인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선정위원단 현지심사평

한국형 목장으로 좁은 목장면적을 활용한 모습이 돋보인다.

퇴비화 시설인 콤포스트 설치가 눈에 띄며 분뇨처리가 훌륭하다.

HACCP 목장으로 깨끗한목장을 구현하고 있다.

지역낙우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봉사를 하고 있다.

실습목장으로 미래 낙농인들에게 교육적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