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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우수목장 년도별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 우수목장 사례입니다.

[대상] 생산에서 체험-교육-치유목장까지 미래낙농의 모델 이시돌목장

“젖을 짜고 목장을 체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낙농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교육하고자 노력합니다.
젖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려구요.”

농부의 수호성자 ‘성 이시돌’과 같은 이름의 세례명을 가진

변효섭 대표와 이대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도시생활만 하던 부인 배은현 씨가

제천으로 내려와 이시돌목장을 세우고 낙농을 시작했다.

목장 이름만큼 평온해 보이는 두 부부의 인상은 귀농한 중년 부부의

여유로운 전원생활이 연상되지만 그들은 얼마 전 떠들썩했던 한 유명래퍼 ‘빚투 사건’의

피해자였으며 목장 안에서 아이 여섯을 낳아 키워온 억척스러운 낙농가다.

젊은 시절 믿었던 선배에게 금전적으로 배신을 당하고 10년에 걸쳐 그 돈을 다 갚느라 고생했지만,

수 십년 만에 걸려 온 국제전화에 그저 ‘잘 지내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사람.

매일 목장의 하루를 시작하면서 감사기도를 한다는 변 대표가

그토록 많은 사연에도 편안해 보이는 것은 좋은 작물을 키우고

정성을 다해 젖을 짜며 깨끗하고 바른 먹거리를 생산하겠다는 신념 때문은 아닐까?

체크포인트

이시돌목장

목장현황, 목장 변천사

변효섭 대표와 부인 배은현 씨

한달에 한번씩 우사바닥 걷어내고 축사 전체 소독
내 목장 맞춤형 TMR 제조법·배합비 연구
사료허실 줄고 유량 늘어… 내공 깊은 목장

농촌 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 농부가 되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 봉사활동을 하다가 농촌에 눌러 앉았습니다. 대학에서는 농업과 무관한 토목을 전공했지만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생산활동이 주는 기쁨에 깊이 심취해 있었어요. 충북 단양의 한 마을에서 3년간 살면서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로 살아보자던 대학생 두 명은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은 젊은이들 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초보 농사꾼들이라 1년 만에 농사가 완전히 망했어요. 친구는 포기하고 도시로 가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1년이 아까워서 진짜 농부가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변효섭 대표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하고 모르는 것은 일일이 물어가면서 농사 일을 배웠다고 한다. 그 당시 그가 살던 마을에 큰 목장이 있었는데 목장 일도 곧잘 돕곤 했던 변 대표는 누구보다 목장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10만평이 넘는 초지가 있던 목장인데 아들이 물려받으면서 목장이 기울기 시작했어요. 소를 한 마리씩 파는데 목장 일을 해서 그런지 소가 너무 아깝더라구요. 결국 제가 다섯 마리를 샀고 초지에다 풀어놓고 젖소를 키우다가 결국 고향인 제천으로 젖소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변 대표는 고향집에 3,300㎡(1,000평) 정도 있던 땅에 작은 축사를 지었다. 축 사 안에 방 한 칸도 직접 지었다.
“가진 게 없었어요. 보온덮개를 덮은 하우스 형태 축사였는데 거기에 직접 벽돌을 사서 방을 한 칸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서울여자였다. 서울에서 명문여대를 졸업하고 특수학교 교사를 하던 배은현 씨는 변 대표의 선함에 반해 시골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대 나온 여자’ 배은현 씨는 축사에 딸린 방 한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부부는 말로 다할 수 없 는 고생을 했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더 이상은 단칸 방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자 정부의 ‘농어민 집짓기 지원사업’을 통해 비로소 집다운 집을 지었고 이후로도 아이들이 더 태어났다. 목장 생활도 안정되고 시작했고 제천지역 에 있는 목장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규모를 슬슬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IMF(국제통화기금)로 인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변 대표는 그간 모은 모든 돈을 빚보증으로 한순간에 잃었다.

젖소 다섯 마리로 낙농을 시작한 이시돌목장은 이제 제천을 대표하는 체험교육목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빚보증 위기, 낙농에 눈을 뜨는 계기

1995년 무렵 제천에서는 목장 규모를 늘리는 사업이 한창이었다. 당시 변 대표는 13마리 정도를 착유하고 있었는데 지역의 친한 낙농가들끼리는 서로 보증을 서주고 대출을 받아 축사를 확장하면서 목장을 늘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매일 통화하고 의지하던 형이었어요. 고등학교 3년 선배였는데 목장을 하면서 정말로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함께 연대 보증을 해서 대출을 받아 목장을 늘렸습니다. 그 형네 목장이 제일 컸죠. 쿼터가 2톤이 넘는 목장이었으니까 제천에서는 아주 큰 편이었습니다.”

(좌) 이시돌목장의 송아지는 넓은 초지에서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자라고 있다.
(우) 이시돌목장의 목장형 유가공공장과 치즈체험장. 체험장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만들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그러다가 IMF가 터졌고 제천 지역 내 목장 15곳이 빚으로 인해 폐업을 했다. 믿었던 형은 변 대표에게는 물론 친인척 돈까지 모두 빌려서는 종적을 감췄다.
“줄도산을 하면서 목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저는 그 형의 보증을 섰던 빚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은행에 성실히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하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래도 모자라더군요. 목장을 꾸려가면서 매달 돈을 갚기로 했습니다. 그 때 아이가 넷이었어요. 아내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매달 돌아오는 이자상환 날짜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 변 대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포기하고 목장 문을 닫거나 야반도주를 선택할 때 변 대표는 낙농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목장을 운영해도 돈이 나오고 그걸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대충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액의 빚이 생기고 아이가 다섯이나 되다보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좀 더 전문적으로 낙농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간 낙농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TMR 제조법과 배합비에 대해서도 연구했다는 변 대표는 제천시에 요청해 자가 TMR기계를 구입해 급이를 시작했다. 원유생산량은 빠르게 늘어갔다.
“일평균 마리당 원유를 22kg 정도 생산할 때였는데 제가 30kg씩 생산하니까 주변에서 많이 놀랐죠. 하루도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매달 돈을 갚아야 했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지만 어찌보면 가장 성실하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경영효율이 가장 높았고 목장에서 버는 수익도 늘었다. 매달 빚을 갚아야 했지만 변 대표는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고 한다. “목장에 맞게 배합비를 짜서 허실이 없게 급이를 하니 사료 값도 절약되고 유량도 늘었습니다. 경영분석도 하고 컨설팅도 받으면서 낙농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죠.” 변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리면서 오히려 낙농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좌) 이시돌목장은 25년 전에 이미 환기를 고려해 축사를 높게 지었다. 특히 변 대표의 연구와 노력으로 목장에 맞는 사료배합비를 구성해 허실이 없게 TMR을 급이하고 있다.
(우) 변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우사바닥을 완전히 걷어내고 축사 전체를 소독한다. 그래서인지 젖소들의 우체가 깨끗하고 유방염 등 각종 질병에 대한 걱정이 없다.

21년만의 합의… “이미 용서했다”

그렇게 10년을 꼬박 보증 선 빚을 갚았다. 그리고는 10여년이 흘러 그 일을 다 잊을 즈음 TV 프로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빚을 지고 도망간 형의 아들이 유명 연예인이 돼 해외의 호화스런 저택을 자랑하고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TV 방송을 통해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형의 부탁으로 합의를 해달라고 사람들이 찾아왔고 며칠 후 21년 만에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10년도 넘게 빚을 갚으며 키워온 여섯 아이들의 얼굴도 눈에 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와 억울함이 아닌 뜻밖의 감정이 변 대표를 덮쳤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목소리를 들으니까 형이 보고 싶더라구요. 제가 맡았던 지역 낙우회의 전임 회장이었어요. 매일 전화하면서 목장 일을 함께 고민했던 형이라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용서고 뭐고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수 십 명의 피해자 중에 합의해 준 유일한 사람이 변 대표라서 법원에서 증인으로 요청을 했다. 증언을 하러 법정에 들어서자 많은 고소인들이 야유를 쏟아냈다고 한다.
“법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형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왜 합의를 해줬냐고 묻길래 그냥 솔직히 제 감정을 말했습니다.”
그의 증언을 듣고 나서 방청석은 조용해졌다고 한다. “세월이 21년이 지났는데 어제와 같을 수는 없죠. 죄는 판사님이 평가하시겠지만 제 자신은 모두 용서했다고, 미운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일을 계기로 정신차리고 제대로 된 낙농업을 하게 됐으니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체험교육목장도 기본은 사양관리에 있다고 믿는 변 대표는 젖소의 번식과 질병 등을 꼼꼼히 일지로 기록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아낌없이 쓰는 톱밥… 퇴비질 우수

“목장마다 사양관리나 축사관리에는 노하우가 있겠지요. 저는 한 달에 한번 축사의 축분을 모두 치웁니다. 여름에는 한 달, 겨울에는 25일마다 치우는데 이렇게 하면 톱밥을 많이 넣지 않아도 되고 바닥상태가 질어지면 또 치우기 때문에 우체도 깨끗한 편입니다.” 바닥관리를 아주 잘하는 농가도 채식장은 질퍽거리기 마련인데 바닥을 자주 치우기 때문에 한 쪽이 질어지거나 하지 않고 질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렇게 바닥을 싹 치우고 나면 소독을 필수적으로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축사를 완전히 치우고 소독하는 거죠. 유방염이 없고 각종 질병에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시돌목장은 축사에 넣는 톱밥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연간 사용하는 톱밥의 가격만 1,600만원에 달한다. “시에서 톱밥 가격의 50%를 보전해 줍니다. 낙농가들이 요구했던 사업인데 젖을 짜서 우유를 생산하는데 우체가 청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젖이 깨끗해야 하니 다른 건 몰라도 톱밥만은 좀 지원해 달라고 했죠.”
매달 우사바닥의 축분을 치우기 때문에 바닥관리도 잘 되지만 퇴비의 품질도 우수하다.
“부숙도를 좋게 하려고 퇴비사 중앙에 통로를 내고 20일에 한번씩 뒤집어 줍니다. 그렇게 하면 퇴비 높이가 낮아져요. 계속해서 공기가 유입돼 부숙이 잘되는 거죠.” 이렇게 관리된 양질의 퇴비는 가을에는 어상천 수박단지에서 가져가고, 봄에는 백운 배추단지에서 가져간다. 지역 유명 특산물 재배 농가들이 선호할 만큼 이시돌목장의 퇴비 질은 뛰어나다. “퇴비장을 하나 더 만들 계획입니다. 퇴비 부숙관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퇴비장 크기가 정말 중요하더라구요.”
변 대표의 꼼꼼한 성격은 착유장에서도 묻어난다. “저는 젖을 짜는 일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민한 젖소를 배려하고 섬세하게 젖을 짜는 작업에 특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1995년에 지은 착유시설에 먼지, 거미줄은 물론 녹 하나 슬지 않은 것을 보면 쓸고 닦는 것이 일상인 변 대표의 성실함이 엿보인다. 2열 4두 텐덤이 설치된 착유실도 물은 전혀 쓰지 않고 건식으로 착유하기 때문에 배출되는 착유세척수가 전혀 없다. 정화조는 전량 위탁처리를 하고 있는데 정화조 위에 창고를 지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 축사지붕에 설치된 차광막. 스위치로 자동개폐해 채광을 조절하고 있다. 해발 300고지에 위치한 이시돌목장은 통풍이 원활해 해충은 물론 냄새가 거의 없고 산소포화도가 높아 젖소들이 건강하다.
(우) 1995년에 지어진 착유장. 낡은 기기들이 세월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관리돼 있다. 2열 4두 텐덤이 설치된 착유실도 물을 사용하지 않고 건식으로 착유하기 때문에 배출되는 세척수가 전혀 없다.

새로운 목표로 시작한 체험목장

보증 빚을 다 갚은 2009년, 변 대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2009년 목장이 안정기에 들면서 축산과학원에서 치즈 만드는 것을 배웠어요. 그 때서야 제가 목장을 운영하면서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산한 우유로 유가공제품 하나 못 만들면 낙농가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제대로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변 대표는 여주대 자연과학대학에 목장형 유가공 교육을 신청했다.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들면서 6차 산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러차례의 신청과 탈락을 거쳐 2014년에 드디어 농림부로부터 6차 산업 대상자로 최종 승인을 받았다. 설계단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결국 2016년 11월에 체험장 및 목장형 유가공공장을 준공하고 낙농 체험객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좌) 축사 바닥관리를 위해 미생물제제를 도포하고 톱밥을 충분히 뿌려주며 자주 로터리를 쳐서 뒤집어준다.
(우) 20일에 한번씩 뒤집기를 통해 부숙이 잘된 이시돌목장의 퇴비는 질이 좋아 배추, 수박 등 주변 경종농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아이들에게 낙농을 제대로 알리는 체험

이시돌목장이 유명한 이유는 충북지역의 몇 안되는 체험목장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체험을 온 아이들에게 단순한 경험이 아닌 낙농과 젖소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교육의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변 대표는 젖을 짜고 목장을 체험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낙농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교육하고자 노력한다.
“오늘도 170명의 아이들이 찾아왔는데 아이들에게 젖소와 관련된 직업을 물어보니 목부 밖에 모르더라구요. 젖소를 그려놓고 몇 십조가 되는 관련산업의 구성을 설명했습니다. 사료산업, 유가공산업, 동물약품산업 등 세분화해서 설명하다 보면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젖소가 없으면 유가공산업이 사라지고, 또 사료회사가 없어지고 이런 식으로 관련 산업들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젖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려구요.”
연간 4,000여 명이 찾는 체험목장이지만 거의 현상유지 정도라고 변 대표는 말한다. “체험 재료로 최고급을 쓰기 때문에 인건비, 건물 유지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운영비 정도가 고작입니다. 앞으로 자율학기제가 안착되면 학점제 로 운영해서 아이들이 체험을 제대로 하고 갈 수 있도록 교육체험목장을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교육목장+심리치료, 치유농업으로 한단계 더

이시돌목장이 체험목장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는 데는 부인 배은현 씨가 운영하고 있는 심리언어치료실이 한 몫을 하 고 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배 씨는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치료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목장 윗쪽에 자리잡은 심리언어클리닉 ‘유딧’은 모래놀이치료, 그림치료 등 각종 심리치료가 가능하다. 제천지 역은 물론 서울이나 외국에 사는 교포들도 와서 치료를 받고 간다고 한다. 일반적인 심리치료와 다르게 자연과 벗하며 젖 소들이 살아 숨쉬는 목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치유가 가능하다고 배 씨는 설명한다.
변 대표는 아내의 심리치료와 더불어 목장체험이 목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치유농업이 최근 유럽에서는 인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한국형 치유농업을 이시돌목장에 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좌) 이시돌목장 입구에 위치한 체험장. 내부에 카페도 함께 운영하면서 직접 만든 유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우) 부인 배은현 씨가 운영하는 심리언어클리닉 ‘유딧’. 영어 You Did의 의미도 담고 있다. 오른쪽 사진 위는 어른도 좋아하는 인기 프로그램인 모래놀이치료 교구

매일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목장의 하루

변 대표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산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려움을 겪고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때 항상 천사처럼 도와주는 이들을 만납니다. 혼자 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걱정하고 있으면 친구가 우연히 찾아와 짐을 함께 옮겨줍니다. 이런 모든 것들에 감사하죠. 늘 감사기도를 하며 삽니다.”
이러한 변 대표의 마음으로 키운 여섯 자녀들도 자연을 사랑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자랐다.
“명문대가 성공의 잣대는 아니지만 자녀들이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잘 컸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이가 여섯이고 생활이 넉넉지 않다보니 학원은 엄두도 못내고 아내가 직접 공부를 가르쳤어요. 아내는 제가 젖을 짜러 목장에 가면 아이들을 2명씩 짝을 지어 송아지 우유 주는 일을 시켰어요. 그래서인지 애들이 모두 자연친화적이고 순한 편이에요.”
그렇게 자란 자녀들 중 2명이 이시돌목장을 물려 받아 낙농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다. “첫째와 셋째가 목장을 물려받고 싶어 합니다.
첫째는 IT계통에 종사하고 있고 셋째는 아내 뒤를 이어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교사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목장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워낙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해서인지 목장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다고 해서 대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변 대표는 자녀들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한 후에 목장에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목장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일인지 알았으면 해요. 단순히 먹고 살려고 하는게 아니라, 낙농이 좋아서 하고 싶어서 목장에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회경험도 하고요. 일본에 130년이 된 목장을 간 적이 있는데 대를 물려서 130년간 가업으로 목장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우리 아이들도 낙농을 소명으로 알고 깨끗한 우유를 생산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좌) 축사면적이 넓지 않아 정화조 위에 창고를 지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 이시돌목장은 충북지역 최초로 사각형 곤포사일리지를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다. 겉면에 수확시기 등을 표시해 순서를 정해 사용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자연 속에서 낙농교과 목장체험을 할 수 있는 이시돌목장은 심리치료와 결합해 새로운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제천시는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진 한방웰빙, 영상문화 관광휴양지인 제천시는 인간중심의 첨단 바이오 산업단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부권 최대의 물류, 교통, 교육의 중심지로 한국철도공사 충북본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선·태백선 경유 등 철도 및 물류 유통의 중심지이다. 제천시인재육성재단 운영과 평생학습도시 추진을 통한 중부내륙의 교육 문화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제천시에는 657농가가 한우 1만6,141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젖소는 7농가로 293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돼지는 21농가가 2만 7,758마리를, 닭은 334농가가 100만8,254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오리도 9농가가 66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추천평

오종권 충북낙농협동조합장

목장형 유가공공장 개설 치즈체험장 운영
모범적 낙농체험 교육목장… 우유소비 홍보활동

1987년 충북 제천 태경목장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1989년 착유우 3마리로 파스퇴르 유업체에 납유를 시작한 이시돌목장은 2001년 낙농진흥회로 납유처를 변경해 현재까지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목장입니다
목장 주변에 9,900㎡(3,000평) 부지에서 조사료 경작을 하며 분뇨를 모두 퇴비로 사용하고 있으며 조사료 수급까지 하는 자연순환농법을 실현하는 목장입니다. 특히 목장형 유가공공장 개설로 치즈체험장을 운영하며 요거트, 치즈를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으며 체험장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만들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건물 옆 조그마한 울타리를 조성해 체험장에 방문하는 방문객과 어린이들에게 낙농체험을 할 수 있도록 송아지 우유주기 체험을 하는 등 낙농산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과 우유 소비홍보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는 목장입니다.

심사평

정하연 국립축산과학원 낙농과 연구관

축사바닥·퇴비사 관리 양호… 냄새 ‘제로’
체험교육·치료목장으로 가능성 ‘미래목장’ 모델

젖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장을 일궈나가고 있는 변효섭 대표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목장입니다. 목장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젖소들이 건강하고 깨끗해 사양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축산 분뇨 악취가 거의 없어 퇴비사와 축사 바닥관리를 성실히 하고 있었음을 눈으로, 코로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미생물 제제와 악취 제거제를 활용해 냄새 저감에 효과를 보고 있는 이시돌목장은 경종농가에 퇴비를 제공하는 동시에 유기적 관계를 맺어 지역사회 공헌에도 큰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장주 개인사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젖소에 대한 일관된 사랑으로 성공적인 낙농업을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아내의 심리치료가 함께 진행되며 낙농체험목장의 교육 및 치료목장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미래목장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선정위원단 현지심사 이모저모

선정위원단 현지심사 이모저모

• 오래된 목장임에도 축사와 착유장 시설이 깨끗하게 잘 관리하고 있으며, 우체가 매우 청결하다.
• 악취제거제와 미생물 제제를 활용해 냄새저감에 효과를 보고 있다.
• 퇴비를 주기적으로 교반하고, 부숙이 완료된 퇴비는 어상천 수박단지에 공급하고 있다.
• 6차산업으로 교육체험목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경과 환경 미화가 우수하다.
• 송아지를 야외에서 넓게 사육하는 것이 인상적이다.